대학청년부 소마북클럽 첫번째, "1세기 교회 예배이야기, 로버트 뱅크스 IVP" 서평 by 박희동

박희동
2022-10-30
조회수 326

대학청년부 박희동 목사입니다. 

 

지난 8월말-9월초 3주간 매주 수요일 저녁에 ZOOM에서 온라인으로 북클럽을 진행했습니다. 수지예본교회 추천도서 중 "1세기 교회 이야기 3부작, 로버트 뱅크스 IVP"을 매주 한권씩 읽고 나눴습니다. 지난 여름수련회 주제였던 '흩어진 나그네, 선교적 부르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몇년 전 개인적으로 써 본 "1세기 교회 예배이야기, 로버트 뱅크스 IVP" (1세기 교회 이야기 3부작 중 1권입니다) 서평입니다. 일기처럼, 묵상노트처럼 썼던 글이라 분량이 많습니다..^^;;

 

내가 젤 좋아했던 책, "1교예이"를 추억하는 나의 이야기

(이 링크를 통해서 보실 수도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Cg-hWSAPI0zwtG7YgtXHvA9lxoBtwveL7pMm8w0/?igshid=YmMyMTA2M2Y=) 

#1 보통 대학생들 6월초는 기말고사, 팀 프로젝트 등으로 분주하다. 대학생 사역이라는 것도 그쯤 되면 약간의 휴지기가 생긴다. 그러다보니 그때 뭔가를 새로 런칭하거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사실 효과도 결과도 미비하다. 오히려 그 때는 더 단촐하게 끊어지지만 않게 뭐든지 하게 된다. 더욱이 시간을 써야 하는 모임이나 채플 등에 대한 결석 까임 방지권이 암암리에 생기기도 한다. 몇해전인지 분명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5년은 훨씬 더 된 일인거 같다. 학년별로 3반을 운영하던 화요정기 모임을 6월 첫주, 전체를 한 반에 불러모았다. 치킨을 예상한 것인지 생각보다 많이 모였었다. 일일이 타이핑해서 어떤 낯선, 그러나 너무도 그리워하던 "한 이야기"의 일부분 A4 2페이지로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뭔가에 홀린 듯 얼마나 떠들어 댔었는지 생생하다.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하던 학생들이 얼마나 기억을 할런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몇몇은 그날 저녁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뭔가를 해보기로 했다. 아니 뭔가를 살아보기로 했다. #소마대청 #수지예본교회 #북클럽 #1세기교회예배이야기 #2017글

 

#2 상승적 성취 욕구에 사로잡힌 사역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지쳐가는 중이었다. 전도도 사람도 도구화되고, 결과가 날 수만 있다면 의도되든 말든 그것이 선이 되고 가치로 규정되는 것은 정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나마 나를 지켜주던 것은 그래도 그래도 같이 있던 사람들이었고, 공동체였다. 뜻도 잘 모르면서 그냥 공동체라고 하면 뭔가 뭉클한 것이 있었고, 선명하지 않아도 그리던 이상향이 있었다. 캠퍼스 사역도, 예배팀 사역도 공동체라는 키워드 안에서 풀어내보려고 이리저리 고민했다. 그것이 목적론적이었는지 사역전략적이었는지 나도 구별이 잘 안되지만 “우리 공동체” 이렇게 이야기 하면 뭔가 제자리를 찾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공동체”는 세속적 리더십, 조직관리 측면에서도, 성경적인 측면에서도 늘 쓴맛이 맴돌았다. 크게 볼것도 없이 나와 부대끼며 함께 지내던 학생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와중에 “다음 세대와 영성”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예배파트에 대한 발제를 하게 되었다. 그때 참고도서들이 브라이언 맥클라렌, 지미 롱, 로버트 웨버 등이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공동체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그림은 마음 속에 바라던 그것과 비슷했지만, 쉽게 수용할 수가 없었다. Belonging before Believing. 이게 구원론인지, 교회론인지. 이게 복음인지, 사회참여인지. 나름 개혁주의를 신봉하던(?) 내게 이런 불경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근본없는 말 잔치요, 자유주의적 망상으로 여겨졌는 지 모른다. 가득찬 불신의 눈으로 보니 D.A카슨이 이멀징 교회 까는 책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때, 카슨이 제안한 것들이 있었다. 건전한(?) 대안적 움직임에 대한 것이었는데 팀 켈러, 마크 드리스콜 류의 미국제 미셔널교회 운동이었다. #소마대청 #수지예본교회 #북클럽 #1세기교회예배이야기 #2017글

 

#3 그때는 미셔널이고 공동체고 뭐고 간에 자세히 잘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한가지 생각 했던 것은 기독교적 공동체라는 것이 그 정체성 자체로 구원론적이며 선교론적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 다운 것이야 말로 구원의 실체이며 복음 전도의 전략이라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본회퍼의 “성도의 공동생활” 등 교회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때 “벽수씨 교회 원정기”라는 책은 나들목교회에 대해서 알게 해줬고, 기존에 즐겨 읽던 책과는 달린 매력적인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한 접근을 보게 했다. 주일 사역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벽수씨 교회 원정기”를 읽다가 중간 좀 지난 지점에서 짧은 탄식과 함께 책을 덮었다. 이거다 싶었다. 벽수씨가 나들목 교회 새신자 교육 때 읽었던 이야기를 두세 페이지로 옮겨 놓았는데, 바로 뱅크스의 “1세기 교회 예배 모습 (여수룬)” 이라는 책이었다 (최근 IVP에서 나온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이전 번역판). 수없이 초대교회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들이 있었다. 나도 여러번 뱉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뱅크스가 그려낸 이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부흥과 선교완성이라는 맹목적 성취에 대한 교리적, 평면적 이해가 전부였다.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서 찾아보고 설교하고 가르쳤지만, 늘 그들의 도덕적 이상 혹은 선교적 열정 등에만 주목했었다. 뱅크스의 서술이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치는 않았지만, 푸블리우스의 1인칭 시점에서 경험된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간의 내 미숙한 이해와 모호함 사이사이에 파고 들었다. 좀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서점을 검색해보아도 절판이었다. 여수룬에 직접 전화를 해서 10권을 구했다. 그리고 리더 학생들에게 선물했고 일단 함께 읽자고 했다. 시험 기간이라서 학생들은 다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벽수씨 책에 있던 일부분을 함께 읽고 나누며 성찰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무식하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해보자고 했다. #소마대청 #수지예본교회 #북클럽 #1세기교회예배이야기 #2017글

 

#4 푸블리우스가 대면한 교회의 모습은 환대로 시작한다. 차별없는 환대와 수용이었다. 그것의 중요한 구현은 바로 함께 먹는 것이었다. 당대의 식사라는 것의 문화적 의미, 사회적 의미를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주인과 종, 과부와 시어머니,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충분히 환대, 급진적인 사랑과 섬김의 실천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먹기로 했다. 사실 대학생 사역에서 먹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오죽하면 치킨이 가장 확실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우스겟소리도 한다. 우리는 자주 함께 먹었다. 그러나 먹기 위해 만나거나 모이는 걸 불편하게 여겼다. 뭔가 더, 그 다음을 의도한, 먹이고 나서 뭔가 하자. 이런 게 늘 있었다. 그러다보니 먹자고 해놓고 다른 걸 먼저 할때도 많았다. 설교라든지, 광고라든지, 꼬실라이제이션이라든지. 하지만 다 안다. 차리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이게 독인지 밥인지 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 다 모여서 그냥 먹기로 했다. 따로 따로 편리한 대로 개인시간 보내다가 시간 맞춰서 의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기로 했다. 딱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넉넉히 먹고 떠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스윽 한 사람이 나와서 오늘 채플을 시작하겠다는 안내를 하고 간단히 기도로 시작했다. 음식물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거 말고는 장내 정리도 없었고, 경건한 분위기 만들려고 하는 다소 경직된 전환도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앉은 채로, 어떤 이는 책상에 걸터 앉아서, 어떤이는 반쯤 돌아 앉은 채로. 에이 그런 모양만 바뀐다고 뭐가 바뀌냐 싶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쉽게 서로에게 말을 걸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거 같았다. 실제로 학생들이 말이 많아졌다. 참여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동아리 모임에 걸맞는 사람들만의 모임에서 푸블리우스가 느낀 이상한 환대가 있는 공동체로 한걸음 떼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들이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것이 자리 잡아 우리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야 겠다고 그래야 겠다고 결심했고, 노력하고 있다. 나중에 팀 체스터의 “A meal with Jesus” 읽으면서 예수님의 환대야 말로 제자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소마대청 #수지예본교회 #북클럽 #1세기교회예배이야기 #2017글


#5 푸블리우스가 지켜본 초대교회의 대화와 반응 또한 우리에게는 중요한 실천 포인트였다. 예수를 따르기 위해 그들은 일상이 달라지고 있었고, 그 일상의 변화에 대한 질문과 실천이 대화의 주요주제들이었다. 그들의 대화가 막히거나 엉킬때 쯤, 바울의 편지를 읽곤 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잊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대략 우리 모임의 흐름은 주로 한두 사람의 열정을 배설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 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설교가 끝나면 핵심 포인트 찾고, 적용 포인트 찾아서 소그룹에서 나눔을 갖곤 했다.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한주를 돌아보고 오늘 설교 본문에 대한 대략적 안내 후, 먼저 몇가지 질문을 가지고 삶을 드러내고 서로의 삶에 관여하고 생각하도록 했다. 그리고 설교를 나누고 다시 우리는 그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또 드러내고 고민하고 나누고,, 최종적으로 주님 앞에 기도로 올려드리면서 모임을 가져가는 것으로 했다. 어떤 친구는 교회 예배 같지 않고 개방적이라서 좋다고 했지만, 또 어떤 친구는 교회 예배 같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간 암묵적으로 말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왜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는지, 동성애가 합당한지, 진짜 이게 전도인지 등등.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공동체가 과연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로 적합한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 신실하게 부르시는 주님을 기뻐하고 노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어찌어찌 흘러왔다. 전도와 제자화.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살아내는 성도가 되고 싶다. 수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비슷한 어투와 모양으로 살았었다. 서투르고 부족한 나로 인해 많이들 힘들었을 게다. 그래도 몇몇은 서로 깊이 공감하고 아직도 서로 격려하며 함께 각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다닌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각자 삶을 통해 주께서 이끄시고 지어가시는 공동체 이야기를 꿈꾸고 있다. 윤리적 도덕적 초월적 이상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 가운데로 초청된 우리의 삶을 성실하게 가꾸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롭고 중요한가 생각한다. 돌아보면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정교한 신학적 통찰이나 깊은 층위의 공동체적 논의를 우리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다.(알아먹지도 못했지만,,)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복음의 은혜가 반영된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다. 참 좋아하는 책이 다시 예쁘게 나와서 너무 반갑고 좋다. 끝. #소마대청 #수지예본교회 #북클럽 #1세기교회예배이야기 #2017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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